콩고는 콩고는 콩고는 콩고는 콩고는 - 2009.12.06
콩고의 판도라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두툼히 잡히는, 아직 사람의 손에 길들여지지 않은 깨끗한 새 책. 도서관 한 쪽에 묵묵히 자리한「콩고의 판도라」의 첫 인상이었다. 나는 제목만으로 그 안에 숨겨진 어마어마한 이야기의 판타지를 상상할 정도로 섬세한 편은 아니라서 이 낯선 제목을 들었을 때도 그저 뭐지, 라는 생각밖에는 없었다. 그러고는 늘 중간중간 책을 덮고는 제목을 다시금 상기한다. 도대체 이 제목의 뜻은 뭘까.
모호한 제목들은 결국 이야기의 끝자락에서 그 이유를 보여준다. 난 사실 이걸 말하고 싶었어, 네가 알았든 몰랐든간에 말이야, 라는 식으로.
난 모든 감상평은 지극히 개인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그것이 틀렸다거나 저속하다거나 수준이 낮다고도 평할 수 없다고도. 객관적이라는 것은 가장 주관적인 생각에서 나오고, 주관적인 생각은 결국 가장 전문적인 것이다. 이러한 충돌을 막기 위해 우리가 늘 변명처럼 쓰는 단어도 있다. 취향.
다행히도 추천으로 읽게 된 이 소설은 내 취향과 썩 잘 맞아 떨어졌고, 바로 직전에「댈려웨이 부인」으로 스스로가 난독증이 아닐까 의심해 볼 정도로 괴로웠기 때문인지 순수하게 `읽고 이해한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기뻤던 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소설이 허구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종종 거짓이라던지 환상이라던지 따져볼 틈도 없이 순진하게 모든 것을 다 믿어버릴 때도 있다. 그것 자체가 허구의 힘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로 이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게 다 거짓이다. 소설 속에는 작가가 존재하고 그 작가가 소설을 쓰는 것을 바라봄, 단지 그 뿐인데 나는 소설의 주인공ㅡ그러니까 작가ㅡ이름을 노려보다 책을 덮고 작가의 이름을 노려보기를 반복한다. 분명 소설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믿어버린 작가의 허구를 적어놓았을 뿐인데 나는 그것을 아무 이유도, 근거도 없이 믿어버리고는 의심을 한다. 이런 식으로 헷갈리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현실까지 망각해버릴지도 모르기에 그만둔다.
결론은 그렇다. 독서는 환상이다.
환상 속 세계에서의 가슴 뛰는 경험을 하게 해준 책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선택되지 않고 그 빛을 숨기고 있는 이 책을 읽게 되어 영광이라던지, 그런 기분.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덕분에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미지의 나라, 아프리카 콩고의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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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 길게 느껴지는 1분 동안 그는 무엇인가를 쓰는 동작을 취했다. 나는 속임수라는 것을, 생각 없이 아무거나 휘갈기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그러나 그는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를 기다리게 만들었다. 아니 그런 식으로 자신의 중요성을 각인시키고, 상대적으로 나를 격하하고 있었다. 늘 그렇듯이 기다리게 만드는 사람은 기다리는 사람보다 위에 있지 않는가. -55p. 노튼과의 두 번째 만남에서.
노튼이 디킨즈의 이야기보다 더 촌스럽고 낯간지러운 이야기를 정리하게 만들어서 얻고자 한 것이 무엇인가. 값싼 동정에 호소하려고? 사회적인 자비를 탄원하려고? 판사들에게 동정이 있었다면 감옥은 텅 비었을 텐데 현실은 죄수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정의는 작렬하는 태양처럼 문명을 빛낸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 또한 태양에게는 눈물을 요구할 수 없다는 말도 있다. -76p.
리처드가 윌리엄에게 종속되는 것은 상상력의 결핍에 따른 열등감 탓이 아니었다. 리처드는 위험한 일이 닥치면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서둘러 피하라고 말하는 반면, 윌리엄은 피하지 말고 머리를 짜내라고 말할 것이다. 리처드가 아이디어를 떠올리거나 주도권을 쥐는 능력이 없었지만, 윌리엄은 어처구니없고 황당하긴 해도 그것들을 지니고 있었다. 그나마 리처드가 지닌,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장점 중 하나는 나의 한계를 인식하고, 윌리엄이 세우는 어떤 깃발이든 그 아래로 들어갈 수 있따는 것이었다. 세상의 원리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알갱이가 없는 사람은 미친 사람에게도 복종한다는 이치. -95p. 크레이버 형제에 관한 서술.
복도의 가구 뒤쪽에 웅크리고 있는 것은 마리 앙투아네트였다. 녀석은 사탄처럼 입을 다물고서 나를 훔쳐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마리 앙트아네트가 거북이라서 자신의 증오를 침묵으로 대변한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 그런 천진난만한 영혼들에게 증오란 강물처럼 깊으면 깊을 수록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반론하고 싶다. -139p. 마리 앙트아네트와의 전쟁 직전, 증오에 대해서.
페페가 베개에서 머리를 들어 올렸다. 마커스는 어둠 속이라 볼 수는 없었지만, 움직임은 감지할 수 있었다. 얼굴 가까이에서 페페의 숨소리가 들렸다.
"마커스, 내가 보여요?"
"아니, 전혀." 마커스는 빤한 질문에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페페, 지금은 밤이야. 게다가 넌 검둥이잖아."
"그게 바로 흰둥이들의 문제입니다." 페페가 다시 몸을 눕히며 대답했다. "백인들은 어둠을 못 보거든요."
-159p. 일명 백인들의 문제점 0000001.
나는 양이 도축장으로 끌려가듯 전쟁으로 내몰린 신세였다. 그러나 일단 양의 제복을 입으면 책임감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은 부질없는 짓이다. 양은 순진한 것이 아니라 어리석다. 언젠가 마커스 가비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콩고에는 절대로 가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과적으로 거짓말이 되었다. 그 전투보다 더 큰 대량학살을, 그것도 유럽 한복판에서 자행된 학살을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콩고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콩고는 바로 우리 자신이었다. -353p.
총알이 콩고의 하늘로 향했다. 우울한 총알은 마커스와 암감이 사랑을 나누러 올라갔던 거대한 나무보다 훨씬 더 높이 올라갔다. 총알이 올라가는 힘과 떨어지는 힘이 일치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즉 허공의 정점에서 정체된 순간, 만일 총알에 눈이 달려 있었다면 총알은 가장 높은 곳에서, 야영지에 등장하는 어느 누구보다도 높은 곳에서 콩고를 내려다보았을 것이다. 총알은 하강이 고통스러웠다. 많은 것을 보았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것을 놓쳐야 하며, 경이로운 경험을 할수록 포기해야 하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539p. 어떤 의미에서 나는 바로 그 우울한 총알이었다. 직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