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002 사랑에 빠진 순간
앨바
2012. 10. 22. 00:37
런던의 첫째 날.
내셔널 갤러리를 가볍게 둘러보고 나와 트라팔가 광장을 마주하고 섰을 때, 나는
가슴까지 뚫을 정도로 시원하게 내리는 비만큼이나 크나큰 절망감에 빠졌다.
이런 식으로 갑자기 쏟아붓는 게 어딨어.
이 곳은 런던이야, 당연한거지, 라고 스스로 위로 해보아도 너무나 부당하게 느껴졌다.
멍하니 서서 가만히 내리는 비만 하염없이 바라보기에는
나의 여행이, 시간이 너무나 아까웠다.
그렇게 벙진 얼굴로 한참을 서 있는데
네가 다가와 내게 시간을 물었다. 그리곤 덧붙여
이 비가 언제 그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5분 후가 될지, 내일이 될지.
그 말에 나는 더욱 큰 절망감을 느꼈고,
런던이 맘에 드니, 라는 너의 물음에
이런 식으로 비만 오는데 좋겠냐고, 뚱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너는 활짝 웃으며
런던을 사랑해달라고 말한다.
나는 이 비가 5분 안에 그친다면 생각해보겠노라고 대답했지만,
비는 5분 안에 그치지 않았고,
나는 너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내셔널 갤러리의 지붕을 벗어나 빗 속으로 나아갔다.
극장 근처에 있는 카페로 비를 피해 들어가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담고
5분, 10분, 15분이 지나도 여전히 쏟아져 내리는 비를 창 밖으로 내다보면서
나는
런던을 사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