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 부산 오 나의 부산(1)
새해와 함께 짧지만 소듕한 휴가도 찾아왔고, 빚까기로 빠져나가기 전에 자잘하게 남겨둔 상여금이 있었기 때문에
떠났다. 부산으로.
무려 새벽 7시 30분 버스를 타기 위해 6시도 되기 전에 기상하여 부랴부랴 준비. 아직도 어색한 경전철을 타고 낯선 동네의 버스터미널을 찾았다. 평일이라 널널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잠시 바글바글 가득 찬 버스 안. 우등 타고 오길 천만 다행이지.
졸다가 노래 듣다가 창 밖보며 멍 때리기를 반복하며 도착한 부산. 터미널 내 작은 카페에 들어가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유경을 기다린다.
좌석이 길다란 부산의 지하철을 타고 맨 처음 향한 곳은 자갈치역. 이지만 자갈치시장은 지나쳐서, 영화골목도 지나쳐서. 곧장 국제시장으로 향한다.
골목길에 들어서자마자 반기는 길 위의 시식단들. 황송하게도 날이 기가 막히게 풀린 주에 떠난 여행이어서 내내 따스함 속에 파묻혀 지냈드랬다. 아무튼 저기서 비빔당면을 야무지게 먹고 있던 사람들. 한 입하고 싶었으나 순두부찌개를 향해 매몰차게 돌진.
국제시장 안에 있던 순두부찌개 맛집. 돌고래. 이름이 왜때문에 돌고래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돌고래. 마침 점심시간즈음이어서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턱 내던져진 찬과 머슴밥과 귀여운 1인용 순두부찌개.
생각보다 짜거나 자극적이지 않아서ㅡ내 입맛엔 안맞았으나, 주린 배를 채우기에 충분했다. 저 머슴밥 다 쓸어먹은 건 안자랑.
배도 채웠겠다, 본격적인 국제시장 나들이.
요런 신기한 솥. 간지솥.
뭐 옆에 이러이런게 좋다, 방송탔다고 붙여있었는데 안찍음.
여기가 아마 <국제시장> 영화 속 나왔다던 꽃분이네 근처 골목이었던 것 같다. 유명세에 치여 사진찍을 때도 한적할 수 없었기에 그냥 안올림. 영화도 안봤고 해서 큰 감흥은 없었다. 오히려 유명세 때문에 힘들어졌다고 하니 안타까울 따름.
부산어묵하면 말할 것도 없고, 요 말랑말랑한 떡꼬치. 정말 순수 가래떡인데 요상하게도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식감에 빠져드는 것 같다.
부산 아지매들 친절해서 너무 좋아T_T
역시 부산답게 종류별 어묵을 묶음으로 팔고 있던 현장. 아주머니들이 무진장 몰려서 머리 위에서 사진 겨우 찍었다.
순두부찌개 막 먹고 나오자마자 떡꼬치+오뎅꼬치 먹고, 슬슬 책방골목에 가볼까 하는 차에 유경이 부꾸미를 발견! 저게 뭐냐며 먹어야겠다며 흥분하는 바람에 나도 맛봤다. 배터져 죽을 것 같았지만 맛있엉T_T
국제시장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하게 컸다. 시장도 지역별 특성이 있는지라 서울이나 의정부에 있는 시장과는 또 색다른 느낌. 무엇보다 이 때부터 사투리의 매력에 발이 걸리기 시작한듯.
그리고 길 건너 도착한 보수동 책방골목.
생애 첫 방문이자 그간 건너 얘기로만 듣고, 사진만 보고 끙끙 앓아온 곳.
초입부터 이런 풍경이 맞아주니 그냥 기절할 뻔.
그 몇달 전 유럽에 갔다온 유경이 한창 로마 얘기를 하고 있던 때라 눈 앞에 ROME이 보이는 순간 으어! 하고 달려갔드랬다. 그 ROME 여행서적과 유경의 손.
그냥 책이 쌓여있는 모양 자체가 좋은 게다. 필히. 파리에서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 들렀을 때도 스믈스믈 떠올랐고.
책이 책장을 넘어 바닥 여기저기에 쌓여 있었고, 그 책의 더미가 거진 책장만큼이나 올라있어 사이사이 빠져나가기도 참 힘들었던 책방. 그 와중에 책 위에 앉아 누가 지나가건 말건 사진을 찍건 말건 온전히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그녀도 멋있어 보였다.
헌책의 매력이랄까. 무심코 집어든 책에서 멋진 문구를 발견했다.
지식을 늘이려 하지 말고 깨달음을 구하라.
그래,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냥 '많이' 읽는 것에만 급급했던 것 같다ㅡ그렇다고 절대 많지도 못하면서.
이렇게 오래된 LP가 빼곡한 서점도 있었다. 이걸 언제 다 이렇게 모으셨을까. 나에겐 익숙치 않은 가요와 팝으로 가득. 결국 팝 싱어는 한 명도 몰랐다는 비참한 사실T_T
뒤적이다 발견한 어린왕자!
책방골목을 한바퀴 훠이훠이 돌고나서 해운대로 넘어가기 전 북카페에서 커피 한 잔하며, 꽂혀 있는 책 무작위로 읽기. 이 때 내가 집은 책이 이동진의 「밤은 책이다」였는데, 다만 프롤로그만 읽었을 뿐인데도 진득히 공감할 수 있는 위로의 말을 얻었다나 뭐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