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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속에서

아무 것도 아닌 아무 것도 아닌데 아득하게 떠오르는 몇몇 순간들이 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은 학교에 다녔는데, 같은 반인 적도 몇 번 있었는데, 친해진 적은 없던 너와 마주했던 몇몇 순간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되지 않아 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암이나 백혈병 같은 흔한 이름의 병은 아니었다. 너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내내 아픈 사람 같진 않았다. 튼튼해보였다. 아마 병은 나중에서야 네 젊고 튼튼한 몸을 집어 삼켰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너무 갑작스러웠다. 고작 스무해 조금 넘겼을 뿐이었다. 그제서야 몇몇 순간들이 눈 앞에 드리웠다. 초등학교 시절 운동장 조례를 하던 중 눈이 마주쳐 어색한 듯 먼저 인사하던 너의 미소. 중학교 시절 남자아이들과 장난을 치던 너의 몸짓. 고등학교 시절 횡단.. 더보기
어떤 사람들은 평생을 가질 수 없는 감정과 생각들이 존재하는가 싶다. 안쓰럽단 생각이 듬과 동시에 내가 안쓰러워할 자격이 있나, 하는 생각도 동시에. 더보기
나쁜 글보다 더 나쁜 것 나쁜 글보다 더 나쁜 건 쓰지 않는 것이다. 더보기
《한낮의 악마》中 Il faut vivre comme on pense, sans quoi l'on finira par penser comme on a vecu. dsé 생각하는 대로 살아라, 그렇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리라. - 폴 부르제, 《한낮의 악마》 중 더보기
겨울이 오자 무기력도 덜컥 찾아왔다. 고등학교 시절, 겨울이 싫다고 징징대던 그녀가 떠오른다. 왜 그렇게 싫어, 라고 물었던가. 대답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긴 기억할 필요도 없다. 지금의 내가 그 대답이 되어주고 있으니. 겨울이 싫다. 아니 싫진 않은데, 달갑지도 않다. 이불 속으로 꽁꽁 파묻혀 출근하기가 죽어도 좋을 만큼 싫어지고 이유 없이, 하릴없이 보내는 나날들만 이어져간다. 망할 겨울! 근데 또 이렇게 무기력해져서 멍청멍청 앉아만 있는 건 내가 또 싫어하잖아? 뭐라든 해야지. 병든 닭마냥 꾸벅꾸벅 졸고 있지만은 않을 거다. 안그래도 순식간에 잃어버릴지 모를 12월을, 그렇게 무심히 보낼 수야 없지. 글을 쓰자. 어차피 내 글이 형편없다는 건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지 않나. 부끄러울 것 없이, 글을 쓰자. .. 더보기
확실히 긴 호흡의 문장을 쓰는 게ㅡ원래도 형편 없지만ㅡ더 어려워졌다. 탓하긴 싫지만, 스마트폰 그래, 너 때문이다. 최근 아이폰6 출시에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 애플은ㅡ도대체 출시 전부터 계속되던 그 악평들은 다 언제 산산조각이 나고ㅡ나에게는 여전히 shit 같다. 그래서 요즘엔 이런 생각이 스믈스믈 기어나온다. 스마트폰과의 작별. 나는 사람이 나를 얽매는 게 싫다고 단언하면서도 이깟 손바닥 만 한 기계가 손목에서부터 서서히 옭아매고 있음에는 이토록 둔했다. 벗어나고 싶다. 나를 멍청하게 만드는 이 기생충에게서. 그런데 너무 뻔하게도 또 들여다본다, 그 기생충을. 마치 애완동물을 어루만지듯 품어준다. 스마트폰을 벗어나는 데 있어 장애물이 있냐고 한다면 단 한 가지, 인스타그램이다ㅡ의외로? 사진을 .. 더보기
가을 내가 her를 만난 게 올해의 초봄이었던가. 가을이 깊어가는 요즘, 봄을 기다리며 맞았던 첫만남을 떠올려본다. 내겐ㅡ뭐라 해도ㅡ올 최고의 영화가 되겠지. 어제의 영화였던 Kill Your Darlings의 한 대사가 떠오른다. 인생이 모두 새로운 걸로만 가득 차있었음 좋겠다는 말. 완벽히 똑같진 않지만. her를 다시 보고싶다. 처음으로. 결코 불가능한 그런 것. 더보기
10년 전보다 지금이 더 낫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