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아닌데 아득하게 떠오르는 몇몇 순간들이 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은 학교에 다녔는데, 같은 반인 적도 몇 번 있었는데, 친해진 적은 없던 너와 마주했던 몇몇 순간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되지 않아 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암이나 백혈병 같은 흔한 이름의 병은 아니었다.
너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내내 아픈 사람 같진 않았다. 튼튼해보였다. 아마 병은 나중에서야 네 젊고 튼튼한 몸을 집어 삼켰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너무 갑작스러웠다. 고작 스무해 조금 넘겼을 뿐이었다.
그제서야 몇몇 순간들이 눈 앞에 드리웠다. 초등학교 시절 운동장 조례를 하던 중 눈이 마주쳐 어색한 듯 먼저 인사하던 너의 미소. 중학교 시절 남자아이들과 장난을 치던 너의 몸짓. 고등학교 시절 횡단보도에서 마주쳐 어색한듯 돌아보며 인사하고 지나치던 너의 뒷모습.
나는 왜 네게 더 말을 걸지 않았을까. 우린 왜 친해지지 못했을까. 그리고 나는 왜 너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걸까. 우린 아무 것도 아니었는데.
안개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