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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하게

금요일 밤, 강남에서

 금요일 퇴근길, 오랜만에 보는(그리고 아마 또 한동안 보기 힘들) 얼굴과 함께 급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회사 근처는 지긋지긋하니 강남으로!

 

진미평양냉면! 저녁 6시부터 발빠르게 찾아들고 있는 손님들

 

 평양냉면이라면 눈물 훔치며 달려갈 정도로 좋아하는 나도 한 번도 가지 못한 곳! 진미평양냉면. 무려 미쉐린 2021 빕 구르망에 선정됐다고 한다. 왜 몰랐지?라고 묻기엔 답이 너무 뻔하다. 강남이잖아. 심리적 거리감이 훵훵하다. 

 그치만 먹기도 전에 난 알 수 있다. 나의 을밀대는 이기지 못하리라는 걸. 원래 평냉은 첫사랑이 끝사랑이라고 하잖아.

 

출입문 옆 당당하게 붙어있는 미쉐린 딱지! 2019년엔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메뉴를 보니 평양물냉면, 비빔냉면, 온면까지 있었다. 사이드는 뭐 이렇게 또 많아. 이것저것 다 시키고 싶은데, 우리가 고른 건!

 

제육 반! 반(半) 메뉴 있는 거 너무 좋다. 입짧은 사람들에게 더더욱

  이것저것 맛보고 싶으니까 평냉, 비냉, 제육반, 만두반을 시켰다. 가장 먼저 나온 제육반! 저녁시간이지만 아직 손님이 없어 메뉴가 금세 나온다. 뜨듯한 제육 고기 한 점에 김치를 싸서 먹었다. 보드랍고 고소하다. 

 

만두 반! 제육 반! 만두 기대하지 않았는데 너무 맛있었다

 솔직히 평양냉면집에서 시켰던 만두가 기대치를 충족시켰던 적은 없어서 만두 반은 그냥 맛보기용으로 시킨 거였는데 웬 걸, 기대 이상이었다. 우리 동네 평양냉면집 만두는(...) 

 아무튼 평양만두도 이렇게 육즙 가득 맛있을 수 있다는 거에 놀랐다. 사실 진미평양냉면은 만두 맛집인 건가.

 

메인디쉬ㅡ물냉과 비냉. 그리고 소주 한 잔까지.

  사실 평양냉면은 소주 먹으려고 먹는 거 아닌가 싶다. 가끔 그냥, 정말 그냥 끼니용으로 먹은 적도 있는데(당연히 해장용은 제외) 약간 삶의 의미가 희석됐다. 사람이면 할 짓이 아니다.

 상대에게 물냉을 내어주고 비냉을 택했다. 이것도 사실 첫 방문에 할 짓이 아니긴 한데 제육 하고 만두를 시키고 나니 양념이 필요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물냉은 사실 이미 겨자와 식초를 넣은 국물 맛을 봐서 평가가 어렵다. 다음에 또 가서 먹어봐야지. 

 


 시간이 조금 남아 청담오뎅엘 갔다. 친구가 추천하는 강남구청 근처 오뎅바 중 한 곳인데, 다른 곳이 오뎅야이던가. 아무튼 오뎅바 같은 건 즐기지 않는 편이긴 한데 배도 부르고 가볍게 먹고 들어가기 좋으니까 선택.

 

내 자리 맞은 편, 샤를로뜨 갱스부르. 내내 황홀했다.

 아니 이게 웬일이야. 샤를로뜨 갱스부르의 액자가 벽 정중앙에 떡하니 놓여있다. 그것도 우리가 나란히 앉은 바 맞은편에. 아슬아슬 담배를 문 그녀와 내내 시선이 마주친다. 아, 최고다.

 

쏘토닉잔이 이럴 일이야?

 중간에 섞어 마시는 건 내켜하지 않는 편이긴 한데, 어차피 많이 마실 것도 아닌지라 소주와 토닉워터를 시켰다. 그런데 웬 걸 잔 모양새가 심상치 않다. 기울어진 위스키 글라스인데, 세상에 오뎅바에서 이런 걸 보게 될 줄이야. 샤를로뜨 갱스부르에 이어 두 번째 놀랐다. '청담'오뎅이라 이름 값하는 건가 싶어 귀엽기도 하고.

 

 예쁜 잔에 타 마시는 술이 맛없을 리가 없다. 게다가 처음부터 느꼈지만 사장님과 일하시는 분들이 죄다 친절했다. 직접 가방과 옷을 정리해주고, 얼음이 비면 말하지 않아도 바로바로 채워주었다. 짧게 있어서 아쉬울 정도로.

 

오뎅바가 코앞이었지만, 하나도 먹지 않았다는 사실

 개인별로 나온 사이드 디쉬도 깜찍했다. 단무지랑 오이피클. 오이피클은 직접 담그는 모양인지 모양이 큼직했다. 개인적으로 이런 작은 포인트를 살리는 술집은 센스 있게 느껴진다. 내 취향으론 대만족.

 

아보카도와 명란구이. 샤를로뜨 갱스부르 봐라 미쳤다.

 오뎅바에 와선 오뎅은 한 꼬치도 먹지 않고 아보카도 명란구이를 시켜먹는 자들 여기 있다. 이미 배가 한껏 부른 뒤라 부담은 없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었던 모양이다. 결과적으로는 또 대만족. 심지어 저기 올리브도 맛있었다. 아 하긴 요새 올리브에 꽂혔다. 절임 올리브 한 병 또 주문해야지.

 

 개인적으로 식당이든 술집이든 동행과 바 테이블에 앉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뭔가 대화도 더 잘되고 부담 없는 느낌. 심지어 맞은편에 샤를로뜨 갱스부르가 있잖아. 테이블 구성만으로는 요 근래, 아니 작년까지 통틀어서 가장 마음에 든 곳이었다. 

 

 다음에는 꼭 오뎅꼬치 먹으러 가야지. 

 결국 강남 맛 기행은 숙제만 남겼네. 진미 평양냉면에서 평양냉면 먹기. 청담오뎅에서 오뎅꼬치 먹기.

 

 오랜만에 저녁 약속은 알차고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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