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혜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중 소재 발전시키기2 ‘I remember’라는 주문에서부터 시작된 연습글
나는 기억한다, 우리 사이에 있던 두 번의 이별을.
첫 번째는 2월의 초순, 겨울이었다. 너와 나는 전날 크게 다투었다. 나는 막 한 달 간의 유럽여행에서 돌아온 참이었다. 공항에 마주나온 너와 너의 집에 맡겨 둔 나의 고양이를 찾으러 너의 동네ㅡ한 때는 나의 것이기도 했던ㅡ에 갔다. 떠나기 전날에 들렀던 삼겹살집에서 다시 회포를 풀었다.
얼마쯤 먹었을까. 너와 나는 다투기 시작했다. 뭐 지금 생각해보면 다 별 것 아닌 일이었다. 모든 연인이 그렇듯. 싸움이 컸는지, 서먹함이 오래갔는지도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음날 우리 집까지 바래다주던 네가 묘하게 계속 거리감을 두길래 차나 한 잔 마시자 했을 뿐이다.
어떻게 하고 싶은데, 하고 나는 물었다. 묘하게 이상한 건 너였으므로.
한참을 머뭇거리던 너는 헤어지는 게 좋을 것 같아, 라고 애매한 답을 내놓았다. 나는 바로 수긍했다.
그래, 그러자.
내가 먼저 성큼 카페를 나섰다. 엉거주춤 뒤따르는 너를 뒤돌아보며 조심히 가, 인사했다. 너는 울먹이며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고 나는 괜찮아, 하고 웃어보였다. 네가 당장이라도 눈물을 떨굴 것 같은 표정이었으므로 나는 너를 안고 잘 지내, 하고 토닥여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처음 헤어졌다.
그 날 나는 같이 사는 동생을 본가로 내쫓고는 나의 고양이를 끌어안고 실컷 울었다. 개운할 정도로.
우리는 그러고도 자주 서로의 소식을 듣거나 마주쳤다(온라인 게임 안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너에게 말을 걸었고 너는 어색해하면서도 내 말을 잘 받아쳤다. 그냥 연인이 아닐 뿐 전직장동료로 별 거 아니게 지내면 된다고 여겼다.
그러다가 너를 다시 찾아간 건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나는 너와 연인일 때에도 너와 친구가 되고 싶었다. 연인이 된 걸 후회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하고 싶었다. 되고 싶었다. 친구가.
나는 네가 나보다 ‘쿨’한 사람일 줄 알았는데 아쉽게도 아니었다. 너는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상처받은 것처럼 나를 대하는 너를 보고 잘못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나는 며칠 몇 주를 쌀쌀하게 굴려 노력하는 너의 옆에 붙어서 너를 어루며 장난치듯 다시 만나자고 했다. 지금, 그때의 생각으로 이렇게 씁쓸한 것 보면 내가 너에게 한참 나쁜 짓을 했다.
너는 금세 내게 넘어왔다.
그러고도 우리는 2년 가까이 함께 했다. 나는 네가 얻은 집 장롱 한 켠에 내 옷가지를 다 채워넣었고, 나의 고양이와 함께 너의 집에 얹혀 살았다. 너는 내가 자길 이용한다고 툴툴 대면서도 절대 나를 내쫓지 않았다.
나는 그 집을 내 집마냥 썼다. 내 흔적을 잔뜩 남겼다. 나의 고양이 흔적은 덤이었다.
우리는 함께 장을 보고 밥을 지어 먹었다. 술도 자주 먹고 영화나 드라마도 함께 보았다. 그 작은 공간에서 시도 때도 없이 붙어 지냈다. 지치지도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둘 모두 깨달은 것 같았다. 이 관계를 끝낼 때가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자주 싸우진 않았지만 싸울 때면 서로를 아주 끔찍해했다. 특히 내가 그랬다. 나는 걸핏하면 끝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오랜 생각이었다. 안그런 척하지만 눈치도 빠른 너는 그런 나를 항상 알아챘다.
이제 더 기대할 바도 없어보였다.
우리는 헤어지기로 했다. 나는 본가로 들어갈 이삿날을 정해놓고 차근차근 짐을 쌌다. 여전히 너의 집에서 너의 옆에 누워 잠을 자며 그랬다. 우리는 서로 잘 지내라며 술 한 잔 함께 하고 노래방에 가 이별노래도 실컷 불렀다. 누군가는 이상한 이별이라고 했다. 아무튼 우리는 그랬다.
이삿짐 트럭이 1년 반 동안 잔뜩 늘어난 나의 짐을 싣고 먼저 길을 떠났고, 나와 나의 고양이는 너의 차를 얹혀 타고 그 뒤를 쫓았다. 3년 전 처음 너의 탈탈거리는 연두색 모닝에 짐을 잔뜩 싣고 떠나왔던 그 길을 거꾸로 타고 달렸다. 연두색 모닝과 이별한 것처럼 이제 우리 차례였다.
차 안에서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아무 말 없이 창밖만 쳐다봤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차만 타면 우는 달을 달래며 마지막으로 서로 손을 스쳤을지도 모르겠다.
너는 우리 집까지 남은 짐을 함께 올려다 주었다. 어쩌다보니 우리 엄마와 인사를 했고, 거실까지 들어와 물을 한 잔 얻어먹었다. 옛 가족사진 속 내 모습을 보며 킬킬 대기도 했다.
너와 나는 다시 1층으로 내려와 인사를 했다.
잘 가, 조심히 들어가, 고마워, 라고 인사를 건넸고 너도 짧막하게 답했다. 우리 둘 모두 첫 번째 이별보다 수월했다. 우리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봄은 만연해 있었고, 벚꽃이 활짝 핀 나무가 바람에 휘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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