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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뜯어보기

가족의 탄생

 가족의 탄생을 몇 번을 봤는지는 모르겠지만ㅡ생각보단 적다ㅡ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제일 많이 울었다, 이번이. 울면서도 스스로 뭐야, 나 왜 이래, 하고 놀랄 정도로. 한 번은 입술 사이로 흐느낌마저 흘러나와 흠칫거리기도 했다.

 뭘까. 뭐가 달라졌을까. 이런 게 20대 후반인건가... 눈물이 많아지는 게...?

 그리고 덕분에 서랍에서 가족의 탄생을 꺼내 놓아주려 했던 나의 의도는 산산조각났다. 나는 이 영화를 사랑하지 않고는 못배길 거다, 앞으로도.

 

 그래도 몇 번째 보는 영화이기에 나름대로 뭔가를 분석해 보려 했던 시도 역시 보기좋게 구겨졌다. 아아 어쩔거야. 이래서는 쓸 말도 없잖아.

 그래서 이번 글은 그냥 내가 좋아하는 몇 가지 포인트를 짚어보는 걸로 마무리할 거다.

 사실 그동안 내 글은 항상 멍청멍청한 생각의 흐름 방식으로ㅡ절대 의도적이지 않다는 게 핵심ㅡ망해가는 반면, carax는 늘 글의 주제 혹은 방향을 정해놓고 써내려가는 게 멋있어 보였기에 한 번 차용해본다.

 

 

 

 첫 번째, 문소리

 나는 문소리를 좋아한다. 그러기가 한 10년, 된 것 같다. 첫 계기는 의외로 당시 다니던 고등학교의 문학 선생님이었는데 문소리의 학교 후배였던 그녀에게 듣는 경험담이 꽤나 흥미진진했던 것 같다ㅡ덕분에 그녀가 교대에 나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그러고 보면 은근히 선생님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연기가 훌륭하다는 것은 애초에 부정할 길 없는 사실이지만, 유난히 가족의 탄생이 나에게 그 뻔한 사실을 끊임없이 각인시킨다. 왜 이 영화로 여우주연상을 타지 못했나 불만이 생길 정도로. 능청스레 연기하는 이 여배우를 좀 보라. 미란다(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미소를 지어주고 싶을 정도다.

 김태용 감독의 인터뷰에서 그런 얘기를 본 적이 있다. 촬영 잘 마쳐놓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도저히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음날 재촬영을 요구했다고. 그런 뜬금없는 상황에 '사람 좋은' 엄태웅은 아이, 나 땜에 그런가보다- 하고 실실 웃고, '머리 좋은' 문소리는 뭐, 어떻게 할까요? 라고 물었다는 뭐 그런, 에피소드. 그 이후로 내게 문소리는 그런, 배우가 되었다.

 

 두 번째, 장면 전환의 타이밍

 학교에서 배운 게 있다. 단 하나의 컷일지라도 그 속에 어떤 구도로 어느 곳에서 왜, 찍을 지에 대한 고민이 들어있어야 한다는 것. 이른바 컷 감각을 길러주기 위한 훈련이었는데, 물론 나야 당연히 실패했지만 때문에ㅡ그 열등감으로 인해ㅡ아무 고민도 보이지 않는 컷에 대한 혐오는 더욱 극에 달했다. 그 희생양이 바로 명량이라 할 수 있지.

 가족의 탄생은 그 지점에서 매우 뛰어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감독이 왜, 어디서, 어떤 구도로 장면을 만들어야 할지를 알고 있으며, 심지어 어디서 끝맺을지도 기가 막히게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은근함

 나는 너저분하게 대사로 상황을 설명하거나 내레이션을 쓰는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놀란의 영화가 여기에서 좀 감점이 된다. 지나치게 대사로 설명을 많이 한다는 점, 에서. 물론 그러지 않고선 대중들이 이해하기 좀 버거운 내용을 주로 다루니까 이해는 한다. 이해는. 어제 막 리마스터링으로 재개봉한 메멘토를 보고 왔는데, 거기서도 그 단점이 보이더라. 심지어는 carax 덕분에 새로이 알게된 단점까지 쁠러스되어 생각보다 카타르시스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훌륭한 영화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게, 그의 장점이다.

 가족의 탄생은 그런 너저분함으로 승부하지 않는다. 아주 은근하게 벌어지는 행동으로 상황을 묘사한다. 그 중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선경(공효진)과 우연한 재회 후 그녀와 함께 살았던 집에서 쫓겨나기 전 류승범의 행동이다. 침대에 걸터 앉아 양말을 신는 장면. 아, 이 얼마나 우아한 묘사인가.

 

 네 번째, 정유미

 내게 정유미를 알린 게 이 영화였던 것 같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그녀에게 빠졌는지는 모르겠다. 이 영화였는지, 좋지 아니한가 였는지, 옥희의 영화 였는지. 어찌됐건 그녀를 사랑한다. 엉엉. 

 채현은 순전히 정유미기에 사랑스러울 수 있는 역할이다. 어찌저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엄마들 품에서 자라온 그녀는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지만 정작 남자친구는 덩그러니 내버려둬 외롭게 만드는 오지랖쟁이다. 경석(봉태규)은 그런 그녀를 헤프다며 질책하고, 채현은 헤픈 게 나쁜 거냐며 되묻는다. 덩달아 나도 고민한다. 헤픈 거, 나쁜 건가?

 

 다섯 번째, 新 가족의 경계선

 가족 영화는 뻔하다. 신파거나 오합지졸이거나. 그러나 가족의 탄생은 조금, 다르다. 유난히 혈육에 대한 집착이 심한 우리나라에서, 거의 남에 가까운 이들이 하나의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그래서 제목 역시 '탄생'인거고. 그 탄생의 정점을 찍는 건 유일한 혈육 사이인 미라가 형철(엄태웅)을 그 '가족'의 경계선 밖으로 내팽개치는 장면이다. 

 봉준호는 앞으로 한강에서 영화를 찍지 못하게 해주겠어, 라는 마음으로 괴물을 찍고, 더 이상의 열차 영화는 없다는 생각으로 설국열차를 만들었다고 한다. 가족의 탄생에서은 마찬가지로 김태용의 이보다 완벽한 가족 영화는 없다, 고 하는 자부심이, 보인다.

 

 그리고 그는 더이상 완벽할 수 없는 여자마저 가졌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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