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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

#002 사랑에 빠진 순간

 

런던의 첫째 날.

내셔널 갤러리를 가볍게 둘러보고 나와 트라팔가 광장을 마주하고 섰을 때, 나는

가슴까지 뚫을 정도로 시원하게 내리는 비만큼이나 크나큰 절망감에 빠졌다.

이런 식으로 갑자기 쏟아붓는 게 어딨어.

이 곳은 런던이야, 당연한거지, 라고 스스로 위로 해보아도 너무나 부당하게 느껴졌다.

멍하니 서서 가만히 내리는 비만 하염없이 바라보기에는

나의 여행이, 시간이 너무나 아까웠다.

그렇게 벙진 얼굴로 한참을 서 있는데

네가 다가와 내게 시간을 물었다. 그리곤 덧붙여

이 비가 언제 그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5분 후가 될지, 내일이 될지.

그 말에 나는 더욱 큰 절망감을 느꼈고,

런던이 맘에 드니, 라는 너의 물음에

이런 식으로 비만 오는데 좋겠냐고, 뚱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너는 활짝 웃으며

런던을 사랑해달라고 말한다.

나는 이 비가 5분 안에 그친다면 생각해보겠노라고 대답했지만,

비는 5분 안에 그치지 않았고,

나는 너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내셔널 갤러리의 지붕을 벗어나 빗 속으로 나아갔다.

극장 근처에 있는 카페로 비를 피해 들어가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담고

5분, 10분, 15분이 지나도 여전히 쏟아져 내리는 비를 창 밖으로 내다보면서

나는

런던을 사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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