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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씹어먹기

담담하게, 하루하루 인생의 진리를 깨달아가는 성장기

 


나는 공부를 못해

저자
야마다 에이미 지음
출판사
작가정신 | 2004-02-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대중성과 문학성을 두루 갖추었다는 평을 받는 저자 야마다 에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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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나의 가치관의 대부분은 나의 고등학교 시절 완성되었다, 고 나는 주장한다. 그래서 이미 7,8년이 훌쩍 지나버린 지금에도 자꾸만 그 때를 추억하고 곱씹는다. 아마 지금의 내 모습이 그 때 내가 상상했던 번듯한 결과물이 되지 못한 채 오히려 그 때 만들어놓은 성과물마저 깎아 먹으며 살고 있어서인 듯 하다.

 나는 그 때 백지와 같았고, 내게 주어지는 것을 그대로 흡수했다. 공부는 못했는데ㅡ아마 이 소설을 집었던 이유도 그랬을거다, 동질감ㅡ뒤늦게 소설에 빠져 오색찬란한 감정의 폭풍을 경험했다. 나의 첫 독서기는 다음에 구구절절 떠들기로 하고, 어쨌든 난 일본소설에 빠졌던 거다.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차례차례 읽고는 일본 3대 여류 작가라는 야마다 에이미까지 손이 닿았다. 이 작품이 먼저였는지, 다른 것이 먼저였는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한 건 이 작품 외에는 썩, 감흥 없이 읽었다는 기억이다. 

 그리고 최근, 인생의, 특히 대학교 4학년 졸업을 앞둔 루저의 삶의 우울증을 앓고 있던 나는 마찬가지로 독서 침체기 또한 앓고 있었다. 그 우울증이라는 놈은 꽤 아팠고 내 인생의 절반을 잃고나서야 서서히 아물어 갔다. 끝이 없을 줄로만 알았는데 모든 것은 다 끝이 있더라. 죽지 않길 잘했다, 는 생각을 잠시 했더랬다. 아무튼, 그럼에도 독서 침체기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결국,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래 다시 고등학생이 된 심정으로, 바람으로 집었던 거다. 저 소설을.

 글씨도 큼직하고 책은 작고, 얇고 공백도 많았다. 한 마디로 수월하게 읽었다는 것이다. 내용은 유치찬란. 역시 초심으로 돌아가는 건 그 때의 행동을 좇아선 안되는 거다. 그래도 얻은 것은 있다. 저 유치찬란하며 어리고, 어리석은 때로는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허세에 가득찬 주인공ㅡ이름을 까먹었네ㅡ이 어떻게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해석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아, 납득이 갔다. 나는 그의 모습에서 그 당시 나의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지금의 나는 그 때의 내가 어떠한 생각들을 가지고 살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희미한 기억의 편린에 기대어, 또 막연한 생각으로 추측해 볼 뿐이다. 왜냐, 나는 일기를 쓰지 않았을 뿐더러 어리석게도 일거수일투족이 담겼던 싸이월드마저 한 번 탈퇴한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미가 있다. 스물다섯 지금, 이 소설에 다시 손이 닿은 것은. 나는 나의 과거의 단서를 이 작품 안에서 찾았다. 그리고 아마 찾기 위해 나도 모르게 헤맸던 것이다. 도서관에 너덜너덜 이미 손실된 책을 외면한 채로 즉시 서점에 달려가 그냥 사버렸던 것이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 없었음에도.

 어리석고 어리고 철딱서니에 고집만 센, 자아가 너무 강해서 때론 남들에게 상처를 주던 나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작품 속 주인공이 일말의 사건 속에서 하나하나 인생의 진리를 깨달을 때마다 나 역시 크게 동요하면서도 순순히 받아들였다. 확실히 이 소설은 맞는 말만 주장하고 있다. 맞는 말. 틀리지 않은 말. 누군가는 다만 다를 뿐이라고 주장하는 그런.

 아마 그 땐 그렇게 생각했을 터다. 너무 당연한 건데 이 자ㅡ소설 속 인물ㅡ는 왜 이걸 이해 못하고 사는거지?

 그리고 지금은 알아버린 거다. 너무도 당연한 그 것을 때로는 타협하고 살게 된다는 것을.

 이렇듯 그 때 모르던 것들은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 때 알던 것들은 지금은 잃어버렸을 것이다. 아주 많이.

 하나의 작품 안에서 나는 그 당시 나의 모습을 보고, 추억을 읽었다. 하나의 문구는 그 때의 밤 풍경을 그렸고, 그 때의 밤 공기를 풍겼다. 그리고 아마 나는 이 책을 집어들 때마다 그 때의 운동장, 흩날리던 모래바람, 해가 질 때즘의 학교 풍경을 떠올리게 될 거다. 언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