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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하게

어느 일요일의 오후

 드디어 오늘, 토익을 봤다. 약 3주동안의ㅡ나름대로는ㅡ열공한 결과가 나올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마냥 하기 싫었던 토익에 정이 들었고, 유형을 조금 파악하고 나니 슥, 풀리는 것을 보며 쾌감도 느꼈다. 역시 공부는 하면 할수록 재미있어진다. 그걸 느낀 것으로 1부는 마치게 되었지만.

 

 

 일요일 오후의 공기에는 어느새 따뜻한 냄새가 배어있었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 아이스크림까지 해치운 뒤 오랜만에 도서관에 들렀다. 나의 학창시절 추억이 몽글몽글 쌓인 곳. 몸은 그대로인데 도서관은 더 작아진 듯 책장 사이가 비좁게 느껴졌다.

 그리고 집에 가는 길, 산책에 나섰다. 음악을 들으며 오랫동안 거닐지 않았던 그 길을 조금은 어색해하며 걸었다. 배가 부를 때하는 산책만큼 좋은 것이 또 있을까. 게다가 이렇게 봄 내음이 나는 겨울날에.

 그리고 문득, 분위기에 취한 나머지 평소에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카페에 들어갔다. 예상외로 푸근하고 따뜻한 느낌이었다. 폭신한 소파에 앉아 그저그런 맛의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책을 조금 읽고 일기를 썼다. 옆 자리에는 서경대학교 영화과 점퍼를 입고 있는 남자와 그 옆에 여자ㅡ남자에 가려져 보이지는 않았다ㅡ가 노트북을 펴들고 시나리오를 쓰는 듯 보였고, 맞은 편 벽 쪽에 앉은 40대 여성 세 명은 자식들에 대한 이런 저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수능에서 시작해서 대학, 학과 그리고 취업 걱정까지 하는 듯하더니 결국은 자식들 뒷담화로 마무리되었다.

 근데 그 모습이 참 좋았다. 어머니들이 하는 자식들의 뒷담화에는 애정이 푹 담겨 있었다. 물론 밉다거나 짜증이 나는 모습도 보였지만. 우리 엄마도 친구들과 만나면 저런 식으로 나의 뒷담화를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었다.

 오랜만에 많은 것을 떠올려보고, 느꼈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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