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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씹어먹기

2019년 하반기에 만난 책들

 

(번호는 상반기와 이어진다)

15. 켄 시걸 <미친듯이 심플> - 강남 교보문고에서 조금 읽다가 인터넷으로 주문한 책이다. 절로 그때의 순간이 떠오른다. 아주 짧았던 행복했던 순간. 이 책도 다 읽고선 가볍게 한 번 더 훑어보았다. 나는 애플신화, 세기의 영웅 잡스에겐 관심이 1도 없던 사람이었는데, 이 책이 그걸 와장창 깨주었다. 켄 시걸은 잡스가 있던 당시 애플의 마케팅 디렉터로 일했던 사람이다. 꽤 오래 잡스와 연을 맺었고, 아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던 듯 보이나 어쩌면 그래서 가장 객관적으로 그를 표현할 수 있는 사람 같았다. 책을 읽다보면 잡스의 완고한 태도와 뻣뻣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쉽사리 동경하게 된다. 특히 사회성이 결여된 채로 벽에 온몸이 쓸리며 모(모난 돌의)를 깎아내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은 더더욱. 책 제목이 단숨에 책 전부를 요약한다. 애플의 홈 버튼은 무조건 한 개여야 한다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잡스의 한 마디가 떠오른다. ‘1보다 작은 수는 없으니까요.’ 결국 승리하는 건 가장 작은 수의 단위, 하나뿐일지 모른다. 세상도, 내 인생도.

 

16. 홍춘욱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 - 참 우스운 일화가 있다. 휴가 전날까지도 마음을 다쳐있던 나는 수영장 앞에서 맥주와 함께 읽을 책을 구매할 정신이 없었고, 공항에 가면 김영하 아저씨 책이 있겠지 싶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챙긴 책이 바로 이, ‘돈의 역사’였다. 자정을 넘겨 타는 비행기라 공항엔 이미 밤에 도착했고, 서점이란 서점은 당연히 다 닫아있었다. 결국 방콕과 후아힌엔 내내 돈의 역사가 함께 했다. 사실 방콕에선 이렇게 저렇게 노느라 책 읽을 새가 없었고, 후아힌 리조트에서나 선베드에 누워 몇 장을 펴든 게 전부였다. 돌아오는 비행기, 불이 다 꺼진 기내에서 전등을 켜놓고 읽으니 또 이렇게 술술 잘 읽힐 수가 없었다. 결국 역사 속에서 돈의 가치와 각 나라간 경제정책은 어떤 식으로 흘러왔는가에 대한 내용이었다. ‘돈’과 ‘역사’에 무지한 나는 아직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재독을 다짐해놓고 다른 책에 의해 계속 밀리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17.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 글쓰기 특강을 읽고 고민없이 바로 구입한 책이다. 아주 뜨겁게 살았던 사람이구나, 경외감이 절로 들었다. 나는 고작 이게 아프다고 징징대고 있었구나. 이런 삶을 산 사람도 있는데. 멋있는 사람이고 존경할 만한 어른이다. 아버지가 작고하셨던 사연을 아주 담담히 두 줄로 적어놓았는데 그 부분을 읽으며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꾸역꾸역 한강을 째려보았던 기억이 난다.

18. 최은영 <쇼코의 미소> - 아 이 책과의 만남은 마치 교통사고와 같았다. 어느 날 나는 평소와 반대방향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고, 집에서 걸어 5분 거리에 있는 신설 도서관을, 이사 온지 6개월만에야 발견한 것이다. 당장 그 주 토요일 답사 겸 도서관을 찾았다. 이미 3시를 넘긴 시각이었다. 잠시 둘러보다 서점에서 몇 번 지나쳐 표지가 익숙한 이 책을 집어들고 쇼파에 앉았다. 단편집이었다. 그 짧은 이야기들이 조금씩 감정을 건드리다가 결국 폭발하듯 터뜨리고 말았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고, 그 와중에 아주 깊은 곳까지 행복했으며, 황홀하고 촉촉한 아름다움에 취하고 말았다. 머리가 띵하고 아팠다가 금세 맑아졌다. 돌아오는 길, 발걸음이 아주 가벼웠던 게 떠오른다. 가는 길에 마트에 들려 사간 와인의 무게까지.

19. 한스 로슬링, 올라 로슬링, 안나 로슬링 뢴룬드 <팩트풀니스> - 이건 가히 2019년 베스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게 아주 큰 깨달음을 주었고, 그 깨달음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내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세상은 나쁜 동시에 좋아지는 과정에 있을 수 있다.’ 그렇다. 이 순간, 이 현실은 단 하나의 정의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우리는 결코 멎어있을 수 없다. 순간은 찰나이고, 동시에 움직인다. 나 역시 세상을 아주 또렷하게 바라보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은 낙관도, 부정도 아니다. 나는 유토피아를 꿈꿀 정도로 어리지도, 디스토피아를 기다릴만큼 어리석지도 않다.

20. 최은영 <내게 무해한 사람> - 최은영의 책을 찾아읽을 수밖에 없었다. 쇼코의 미소가 내게 준 감정을 다시금 느끼고 싶었다. 물론 결과는 성공적이진 않았지만, 최은영은 여전히 훌륭했다. 얼핏 이렇게 투박한 문체로 이렇게 따뜻하게 사람 마음을 안아줄 수 있다니 그가 너무 사랑스러운 사람 같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읽고 나면 제목에 대한 이미지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그려진다. 내게 무해해야만 하는 사람. 아주 잔인한, 일방적으로 편안한 감정의 강요.

21. 김영하 <여행의 이유> - 여름의 끝에 시내를 만나러 가는 고속버스에서 읽었던 책. 여행을 함께 가는 책은 항상 그때의 기억을 머금고 있어 더욱 소중하다. 김영하 아저씨 책은 한 권도 읽은 적이 없는데, 처음 만나는 게 소설이 아닌 에세이라서 아저씨가 조금 속상할 것 같다. 이게 마지막이면 안될텐데. 잡학사전이라는 TV프로에 나온 뒤로 떠도는 이런저런 프로그램과 강연의 캡쳐본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보통 섹시함의 종류를 이렇게 저렇게 나누기도 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지적 섹시함’의 대명사 같은 사람. 그게 내가 그의 책을 읽기 전 갖고 있던 그에 대한 이미지였다. 그리고 글을 읽고나니 어김없이 그 환상은 깨졌다. 역시 이미지는 허상일 뿐, 현실은 거칠고 투박하다. 그렇다고 그가 매력적이지 않았냐고 물으면 그건 전혀 아니고, 오히려 사람 같아서 좋았다. 되게 엉망인 사람. 이 책 역시 몇 번 나를 울렸는데, 그 중 가장 크게 운 부분은 역시나 ‘반려동물’이라는 단어에 대한 그의 생각이었다. ‘반려’라고 하기엔 너무 무겁고 ‘애완’이라고 하기엔 너무 가볍다. 무슨 ‘반려’들이 그렇게 일찍 떠나는가. 라고 이미 몇 번의 이별을 겪은 상처 받은 사람의 투덜거림. 그래 조금 가벼워지지 않고선 인간같이 약한 존재는 금세 무너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22. 데루야 하나코, 오카다 게이코 <로지컬 씽킹> - 그 유명한 MECE를 찾았다. 나는 참 별 거도 모르면서 아는 체만 하고 살았구나, 라고 다시금 깨달았다. 내 머릿속 무수한 생각들을 내가 얼마나 표현을 못하고 있었는지와 논리적으로 말하고 글 쓰는 게 생각보다 얼마나 더 어려운지까지.

23. 이다혜 <출근길의 주문> - 블로그에 이미 한 번 정리한 적이 있는 책이다. 그만큼 접힌 페이지가 많았고, 마음이 동해 나도 모르게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 횟수가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의 수만큼이나 많았던 책. 가정을 지키는 한 가지 역할에만 분류되지 않고 사회에서 더욱 당당하게 내 자리를 지키고 싶은 여성들을 위한 책. 아주 훌륭한 여자선배의 주옥같은 이야기와 조언. 여성들이여, 연대하자.

24. 수전 케인 <콰이어트> - MBTI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과 탐구는 결국 이 책으로 나를 이끌었다. 전형적인 내향형 작가(게다가 여자)가 쓴 내향형과 외향형 모두를 위한 이야기. 흔히 하는 굉장히 뻔한 얘기로 ‘우리 서로의 차이점을 인지하고 인정하고 서로 도우며 삽시다.’ 처럼 말만 쉽고 행위는 어려운. 이미 일정부분 알고는 있었지만 또 새삼 흥미로왔던 것은 내향/외향성이 뇌의 속성에서부터 타고난 차이라는 것. MBTI든 뭐든, 사람의 성향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대표적인 말 중에 ‘성격은 변할 수 있어.’ 가 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우리는 타고난 성향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 그 안에서 사람들을 접하고 겪어가며 나와 다른 성향의 행동과 태도를 습득하고 따라할 뿐이다. 물론 그게 잘못됐다는 것 역시 아니다. 그저 나 스스로 어떤 사람인가를 깨닫고 어떠한 태도를 취할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으면 된다. 나는 내향형의 사람이다. 사람을 만나 대화할 때 부끄럽거나 쑥스럽지 않으나 대중 앞에 설 때는 몸둘 바를 모르겠고, 내 주장을 명확히 밝히는 데에 스스럼 없으나 여러 사람과의 논쟁은 피로하다. 나는 이런 나의 모습을 잘났거나 못났다고 평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그런 사람이고, 훈련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갈 뿐이다.

25. 이남석 <프로이트 씨 소통은 어떻게 하나요> - 프로이트의 이론과 사상에 대해 대화체로 쉽게 풀어놓은 청소년 추천도서. 도서관에서 찾아서 본 책이었으나, 크게 감흥은 없었다. 그저 몇 가지 정보를 얻었다는 것에 만족.

26. 요시자와 준토쿠 <보고서 작성 원리 70> - PPT와 보고서 작성 전반에 대한 실용적인 팁과 정보를 잘 정리해놓은 책. 나름대로 보고서 작성이나 PPT 모두 잘한다고 생각했으나, 배울 건 여전히 무수히 많다는 걸 깨달았다.

27. 토미타 카즈마사 <미친속도 PDCA> - Plan Do Check Act(Adjust)의 일하는 단계를 정리해놓은 책. 이 역시 구조화에 대한 책이라 다른 책과의 중복성이 높아 큰 인상을 남기진 못했다.

28. 켄 블랜차드, 셀든 보울즈 <겅호!> - 본부장님 추천으로 본 책. 그냥 굉장히 옛날 책st이었다. 동화같은 이야기.

29. 박소연 <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합니다> - 아 페이스북에서 몇 번 보고 이전부터 관심이 갔던 책인데 결과적으론 매우 실망스러웠다. 아 이런 너무 가벼운 책들이 많이 나오기도 하는 것 같다. 로지컬 씽킹의 예시까지 고대로 가져다 놓은 걸 보고 조금 놀래기도 했다. 그냥 자기자신을 위해 쓴 것 같은 책.

30. 손원평 <아몬드> - 도갈 추천으로 읽은 책. 이 책 역시 표지는 이미 매우 익숙했다. 무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소년의 얼굴. ‘알렉시티미아Alexithymia’ 이른바 감정표현불능증을 겪고 있는 소년의 성장스토리. 때로 마음이 아프고, 때로 크게 웃고, 때로 후련했으나 딱 거기까지인 소설.

31. 최영훈 <체계적 직무분석 방법론> - 프로젝트 task 중 직무분석을 위해 빽빽이 공부한 책. 이미 몇 달 전에 이위원이 사줬었는데 당장 업무에 직면하고나서야 펴보았다. 이해하기 쉽게 아주 쉬운 언어로 풀어놓아 도움이 많이 된 책이다. 물론 실무에 적용하는 데에는 내 역량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도 인덱스를 일일이 붙이고 줄을 치고, task 수행 내내 옆에 끼고 몇 번을 들여다보아서 아주 정이 든 책이다.

32. 캐런 버먼, 조 나이트 <숫자의 진짜 의미를 읽어내는 재무제표 분석법> (미완)
33. 대니얼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 (미완)
34. Jay B. Barney <전략경영과 경쟁우위> (미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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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미완인 책이 많아 아쉽다.
두껍고 어려운 책들은 부러 시간내어 읽어야 하는데 집에선 한없이 게을러져 관성을 이겨내기 쉽질 않다.

올해는 조금 더 알차게 좋은 책을 많이 읽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