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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뜯어보기

La vie d'adele

아델의 인생, 정도가 되려나 직역한다면.

우리나라엔 가장 따뜻한 색, 블루라는 제목으로 개봉한 이 영화.

 

어느 영화나 직접 스크린 앞에서 용기를 내어 그 본질을 마주하기 전 주어지는 이미지가 있기 마련인데,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내게 꽤 커다란 부담을 안겨주었다.

이유는 딱히 없다. 그냥, 제목이 불러 일으키는 호기심을 얼핏 두려움으로 각인시킨 포스터의 두 여인과 장장 3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 정도? 아, 또 하나 더한다면 예술영화라는 카테고리의 공포까지.

 

사실 영앤뷰티풀 이후로 포스팅하지 못한 영화가 수두룩하지만, 가장 뜨끈뜨끈한 이 리뷰를 늘어놓는 이유는 뭐 당연하게도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영화가. 그녀가.

 

 

 익숙치 않은 얼굴의 여배우ㅡ심지어 이름이 배역의 그것과 같은ㅡ아델은 꽤 멍한 표정을 짓는 토끼를 연상시키는 귀여운 소녀였지만, 장장 3시간, 바로 말하면 고작 3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뭇 아름다운 숙녀로 성장했다.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에 떡진 머리, 울 때는 눈물 콧물 다 쏟아내며 온갖 추잡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그녀지만 아 그래서인가, 마츠코ㅡ혐오스런ㅡ가 떠오르며 그만큼 아름답다, 생각했다.

 이 영화는 클로즈업의 모든 긍정적 작용뿐 아니라 부작용까지 다 끌어안고 가는 작품이기도 했다. 맨 앞줄에서 보는 핸드헬드 클로즈업은 적응하기도 퍽 힘들었다. 그렇지만 극히 제한된 공간(프레임) 안에서도 중요한 부분은 모두 살려두는 디테일한 면이 역시 걸작이구나, 싶기도 했다.

 

 영화의 흐름에 따라 나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자면 이러했다.

 저렇게 책 읽으며 살고 싶다 -> 어서 봄이 왔으면 -> 레아세이두에게 설레임 -> 정사신은 조금, 지나치다 -> 가슴이 아프다(이 시점부터 마츠코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 C'est Beau. C'est Beau.

 

 마지막 C'est Beau(아름답다)는 이 영화를 보며 문득 홍상수를 떠올린 내가 내뱉을 수 있는 공통의 감탄사였다. ('다른 나라에서' 이자벨 위페르의 대사)

 중간, 레아 세이두의 미소에 설레인 것은 불가항력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레즈가 아님에도.

 배우들의 괴로움을 느낄 정도의 정사신은 솔직히 조금, 불편했다. 그녀들의 아름다운 몸을 바라보는 것은 황홀했으나 지나친 욕심 역시 그 신의 담겨 있었다.

 

 아, 한 가지 더.

 가장 따뜻한 색, 블루라는 제목이 어디서, 어떻게 흘러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영화의 중요한 요소인 만큼 그 키워드를 아델에 맞춰 표현하고 싶었을지는 모르겠으나, 영화 속 아델의 대사처럼 상상할 여지를 뭉개버리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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