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영화의 미쟝센을 분석하는 데에는 별 재능이 없다. 이게 영화를 좋아하고, (과거)보다 성찰력있는 평론을 하고자 하는 인간이 할 소리이겠냐마는.
영화가 시작됐을 때, 불현듯 내가 왕가위 감독의 영화는 오직 단 한 편, 중경삼림 밖에 보질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랐으며ㅡ그것도 딱 한 번, 때문에ㅡ이 영화가 그와 자연스레 오버랩되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랐다.
그 작은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젊고 아름다운 양조위가 눈을 반짝이며 반갑게 맞아줄 것 같았다. 현실은 머리 벗겨진 주드 로였지만.
참 영화의 가장 좋았던 장면을 하나 꼽아보자면,
엘리자베스가 길을 떠나기 전, 잠든 그녀의 입술에 제레미의 입술이 닿는 그 순간이었다.
마지막에도 반복되는 장면이기도 한데, 첫키스만 못했을 뿐더러 심지어는 시큰둥했다.
그냥 단순히, 키스하고 난 뒤의 주드 로의 표정이 좋다. 너무너무.
영화를 한 줄로 정리해보자면, 사랑에 상처 받은 여인의 로드 무비, 정도?
그 밤의 여정에 그녀와 만나는 다른 이들 역시 모두 커다란 상처를 하나씩 달고 있다.
그리고 결국엔 모두들 그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 각각의 방식으로.
이 영화를 보며 르윈(인사이드 르윈)이 떠올랐던 건,
결국 떠돌아다니던 그, 와 그녀가 끝엔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구조 때문이었다.
다른 게 있다면 르윈의 겨울은 여전히 꽁꽁 얼어붙은 채이고, 엘리자베스의 겨울은 이미 얼음을 녹이기 시작했다는 점.
우리 리뷰에 별점 칠하는 시스템은 없지만, 나에게 이 영화의 별점을 매기라면
딱 세 개. 주겠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참, 나는 로드무비를 좋아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런 점에서 보면 별점이 조금 짠 것 같기도 한데,
차마 더 주기 싫은 건
영화의 시작과 끝인 제레미의 카페, 그 공간에서 벌어지는 그들의 대화와 그 때의 엘리자베스가 싫기 때문이다.
온통 파랗고 빨간, 연극 무대 한 켠에 놓인 세트 같은 그 카페 속 엘리자베스는 작위적이다. 그들의 대화 역시도. 유리병 안 열쇠를 골라 들어올리며 여기 얽힌 사연을 얘기해달라던 그녀가, 그녀에게 블루베리 파이를 건네주고 풍선만 한 케익을 퍼먹던 그도.
그게 왕 감독이 일부러 연출한 방식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싹 다 고치고 싶다. 처음과 끝.
반면에 이별의 아픔을 떨쳐버리기 위해 떠난 그녀가 바Bar에서 일하며 만나게 되는 어니와 수 린의 에피소드, 카지노에서 만나게 되는 레슬리와의 에피소드는 좋았다.
무엇보다도 나탈리 포트만이 등장하는 마지막 에피소드가 가장 내 마음을 끌었는데,
아마 로드무비의 상징과도 같은 황야를 달리는 오픈카 장면과ㅡ델마와 루이스도 잠깐 떠올라 더욱 좋았다ㅡ나탈리 포트만 때문이었으리라.
베스와 레슬리가 라스베가스로 돌아가는 중에 끼니를 때우러 들어간 식당에서 그녀의 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에서 계속해서 전화가 오는 상황이 벌어지는데, 사람의 심리 읽는 데 도가 텄다는 레슬리는 그 전화를 끝까지 무시한다.
사실이면 어쩔 거냐는 베스의 물음에 상관 없다고 대답하는 그녀.
거짓말. 이라고 질책했을 때, 눈을 아래로 내리깐 채로 미간을 찌푸리는 레슬리. 그래, 이 표정이 너무 좋다.
이거 뭐, 아까부터 표정 타령만 하네.
어쨌든 나탈리 포트만이 레슬리를 연기했다는 게 참 흥미롭다. 그녀에게서 이전엔 보지 못한 캐릭터여서. 그런 표정을, 너무 자연스레 지어서.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속 레슬리는 겉모습과 다르게 실상은 너무나도 여려서 상처투성이인 인간이 얼마나 방어적인가를 아주 잘 표현한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아쉬운 점은,
영화 속 상처 받은 인물들의 치유 과정이 너무 쉽게 그려졌다는 것이다.
각각에 에피소드를 구성해 나가기에 그 편이 더 수월했기 때문이겠지만,
심지어 엘리자베스의 300일 간의 치유 여정 역시도 단순히 각각의 에피소드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였을 뿐, 그녀의 가슴 속으로 들어가 깊게 공감할 수 있는 중심 이야기가 빠져 있단 느낌이다.
어쩌면 그래서
다시 돌아간 제레미의 카페 속 그녀가 여전히 멀게 느껴졌는지도.
그래서, 마지막 장면이자, 그들의 두 번째 입맞춤, 그녀의 또 다른 시작이 전혀 새로울 것 없이 식상하게 느껴졌는지도.
좋은 것도 많았지만, 아쉬움이 더 많이 남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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