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생각과 토론의 자유
밀은 1장(머리말)에서 시민의 자유, 사회적 자유를 주제로 사회가 개인을 상대로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성질과 한계를 살펴보는 것이 책의 목적이라고 언급한다.
2장(생각과 토론의 자유)은 그런 측면에서 권력은 결코 사람의 생각이나 토론의 자유를 앗아갈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도대체 왜 권력은ㅡ혹은 권력을 지닌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용납하지 못하고, 다른 의견을 억누르고 억압하려고 하는지 설명한다.
인간의 양식을 위해서는 불행한 일이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이론상으로는 인정하면서도, 막상 현실 문제에 부딪히면 좀처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p.51~52
그러나 숱한 논리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라는 점에서 볼 때, 시대가 개인보다 더 나을 것이 없음은 시대 그 자체가 증명해준다. 각 시대는 수많은 의견을 잉태하는데, 시간이 지나다 보면 그런 의견들이 잘못되었을 뿐 아니라 우스꽝스러운 것이라고 판명 나는 경우도 많다. 과거가 현재에 의해 부정되듯이 현재는 미래에 의해 번복될 것이다. 그래서 현재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생각들 가운데 상당 수가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는 폐기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p. 53
밀은 현재 우리의 생각이 단순한 찰나의 판단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과거의 통념이 그러하듯 현재의 생각도 단순히 흘러가서 흩어지는 구름일 뿐이라고. 그러면서 동시에 인간의 성공, 세계의 발전은 지속되어 온 판단의 시정 덕분이라고 얘기한다. 내가 내뱉은 말을 도로 점검하고 고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자랑스러운 자세라고.
전체적으로 볼 때 인류의 생각과 행동이 지금처럼 놀라울 만큼 이성적인 방향으로 발전해올 수 있었던 것은 무슨 까닭일까? 인류가 이런 상태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인간 정신의 한 특징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지적 또는 도덕적인 존재로서 인간이 보여주는 모든 자랑스러운 것들의 근원, 즉 자신의 잘못을 시정할 수 있는 능력 덕분에 이렇게 된 것이다. 인간은 토론과 경험에 힘입어 자신의 과오를 고칠 수 있다. -p.56
사실 스스로가 진실을 드러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실에 관한 사람들의 논평이 있어야 그 의미를 알 수 있게 된다. 인간이 내리는 판단의 힘과 가치는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판단이 잘못되었을 때 그것을 고칠 수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한다. -p.57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보다 가장 자신 스스로에 대해, 자신이 내뱉은 말에 대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 나의 생각은, 나의 주장은,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결국 아무런 울타리도 없는 광장에 내던져져 사람들로 하여금 온갖 평가를 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토론으로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그런 토론의 현장에, 논쟁의 순간에 스스로의 생각과 판단을 더 많이 노출해야 한다. 심지어 성인에 이르러서도 악마의 말에 귀 기울일진데 한낱 평범한 인간인 내가 누구더러 아둔하다고 귀를 막을 자격이 없는 것이다.
자기 생각에 명확하게 맞설 수 있는 모든 의견들을 소상하게 잘 파악하고 이런저런 반박에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밝힐 수 있는 사람ㅡ즉 자신에 대한 반대 의견이나 듣기 싫은 소리를 피하기보다 그것을 자청해 나서고, 다양한 측면에서 제기될 수 있는 수많은 비판을 봉쇄하지 않는 사람ㅡ은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자신의 판단에 더 자신감을 품을 만하다. -p.58
예를 들어, 교회 가운데서도 가장 완고하다고 할 수 있는 로마 가톨릭교회는 새로운 성자를 인정하는 시성식에서조차 ‘악마의 변 devil’s advocate’을 인내하며 듣는다. 인간으로서 최고의 경지에 이른 성인이라 하더라도, 악마가 그에게 할 수 있는 온갖 험담이 혹시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따져보기 전에는 그런 영광된 칭송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p.58
그렇다면 진리란 무엇인가. 무엇이 진리가 될 수 있는가. 우리가 믿고 있는 진리의 실체는 무엇인가.
밀은 여기에서도 기존의 관념, 생각, 그냥 관성적으로 믿어온 것들에 대해 다시 한 번 들여다 볼 것을 권한다. 네가 완전히 믿고 있는 무언가조차 토론을 통해 검증되지 않고서는 진리라고 부를 수 없다고.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의 근거를 조금도 알지 못하고, 극히 피상적으로 제기되는 비판에도 전혀 대응하지 못한다. (중략)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높은 권력자가 어떤 생각을 한번 심어주고 나면, 그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이 아무런 득이 되지 않고 해가 될 뿐이라고 여길 개연성이 높다. -p.83
자기 생각으로는 어떤 생각이 매우 진실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실은 그것이 토론을 통해 검증되지 않은 편견일 수 있다. 이런 가능성을 배제한다면 이는 이성적인 사람의 진리관이 될 수 없다. 이것은 진리가 무엇인지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그런 식의 진리란 미신에 지나지 않으며, 진리를 설명하는 단어들을 우연하게 조합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p.84
밀은 그리스도교를 흥미롭게 차용한다. 이렇게 얘기도 한다. ‘이 책에서 다루는 명제를 검증하는 데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p.107
그가 표현하는 그리스도교의 도덕은 내가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게 느꼈던 개신교의 행위, 그리고 그들이 늘 주창하고 유지하려고 하는 태도를 정확하게 비판한다. 착한 일을 하라Do고 하는 대신에 나쁜 짓을 하지 말아라Don’t라고 말하는 교리. 그저 하느님의 뜻을 믿고(의심하지 말고) 순응하며 살라(반항하지 말라).
그리스도교 도덕은 반동적인reaction 성격이 매우 강하다. (중략) 그 기본 지향은 긍정적이라기보다 부정적이다. 적극적이지 못하고 소극적이다. 고귀함보다는 결백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선을 활기차게 추구하기보다는 악을 억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계율에는 (정말 적절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일을 하라’는 것보다 ‘어떤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압도적으로 많다. -p.109
그 결과 그리스도교인들은 고대의 뛰어난 인물들보다 훨씬 못한 사람들이 되었다.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과 왕래도 하지 않는 등, 이웃에 대해 무감각해지면서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로 전락했다. 그것은 한마디로 수동적인 복종의 교리이다. 이 교리는 모든 기성 권위에 순종할 것을 가르친다. -p.110
2장의 말미에서 밀은 다시 한 번 다른 생각을 가질 자유, 더 나아가 다른 생각을 가져야만 하는 이유를 강조한다. 우리가 이미 오래동안 행해왔던 침묵의 강요는 결코 진리를 판가름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그 어떠한 의견도 온전히 무시당할 수 없다는 것.
재미있는 문장도 있다. 그저 다름을 받아들이고 평가를 온전히 흡수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생각을 가졌든’ 존경할만 하다고. 태도 하나만으로 그 사람이 가진 생각과 의견, 관념을 다 뛰어 넘어 훌륭하다고 얘기할 수 있다니, 존경 받을 만한 사람되는 거 어렵지 않잖아? (그럴 리 없다.)
우리는 지금까지 네 가지 분명한 이유 때문에 다른 의견을 가질 자유와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인간의 정신적 복리를 위해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첫째, 침묵을 강요당하는 모든 의견은, 그것이 어떤 의견인지 우리가 확실히 알 수는 없다 하더라도, 진리일 가능성이 있다. 이 사실을 부인하면 우리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음infallibility을 전제하는 셈이 된다.
둘째, 침묵을 강요당하는 의견이 틀린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일정 부분 진리를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런 일이 아주 흔하다. 어떤 문제에 관한 것이든 통설이나 다수의 의견이 전적으로 옳은 경우는 드물거나 아예 없다. 따라서 대립하는 의견들을 서로 부딪치게 하는 것만이 나머지 진리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셋째, 통설이 진리일 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옳은 것이라고 하자. 그렇다고 해도 어렵고 진지하게 시험을 받지 않으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 진리의 합리적인 근거를 그다지 이해하지도 느끼지도 못한 채 그저 하나의 편견과 같은 것으로만 간직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네번째로, 그 주장의 의미 자체가 실종되거나 퇴색하면서 사람들의 성격과 행동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선을 위해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는 하나의 헛된 독단적 구호로 전락하면서, 이성이나 개인적 경험에서 그 어떤 강력하고 진심어린 확신이 자라나는 것을 방해하고 가로막게 되는 것이다. -p.115~116
자신과 반대되는 사람들의 진짜 생각이 무엇인지 차분하게 들어볼 수 있고 정직하게 평가할 수 있는, 그래서 그들에게 불리한 것이라고 과장하지 않고, 또 유리한 것이라고 해서 결코 차단하지도 않는 사람은, 그가 누구든 또 어떤 생각을 가졌든 존경받을 만하다. -p.119
역시 2탄도 2장에서 그쳤다. 책 한 권 풀어내는 게 이렇게 몇 탄까지 갈 일인가. 것도 이렇게 얇디 얇은 책을...!
사실 쉽고 짧게 풀어내기 어려운 만큼 내게는 많은 깨달음을 주었던 책이다. 나의 말과 태도, 생각을 여러 번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고집도, 자기 주장도 강한 나는 정작 그 누구에게도 내 의견을 온전히 드러내고 평가 받은 적이 없었다. 그저 다른 이들을 어리석고 아둔하다고 여겼다. 그러면서 스스로 만든 성에 갇혀 특별하고 잘난 줄 착각하고 있던 거다.
하지만 밀이 얘기했듯 손쉽게 평가에 노출될 수 있는 환경을 아직 찾지 못했다. 아니면 여전히 두려워하고 핑계를 대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드러내놓으면 어디든 광장이 될 수 있는 것을.
나는 내 생각에 반하는 의견에 쉽게 감정을 드러낸다. 여전히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고 노력해야 한다. 의식하지 않으면 자꾸 혼자만의 방에서 생각을 부풀린다. 그것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줄도 모른 채. <자유론> 다시 읽으며, 그리고 내가 좋아했던 문장을 다시 짚으며 다시 한 번 나를 바라본다. 어리석은 행동과 태도를 떠올려본다.
다시 스스로에게 기회를 준다. 보다 나은 사람이 될 기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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