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구스 반 산트는 이제 꽤 미스테릭한 감독으로 자리매김ㅡ이런 표현이 허용된다면ㅡ했다.
굿 윌 헌팅, 라스트 데이즈, 사랑해 파리, 레스트리스, 그리고 엘리펀트까지.
내가 비연속적으로 접한 그의 영화들은 대체로 제각각이다.
어쩌면 그가 이렇게 오랫동안 영화를 하면서 꾸준히 좋은 필모를 유지해온 것도 다 그의 영화가 품고 있는 다양성 덕이 아닌가 싶다.
개봉 당시 이 영화를 접했다면 나는 단연 충격에 입을 다물지 못했을 것이다. 2004년.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점. 콜럼바인 고교 총기난사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 영화를 말이다.
어쩌면 다행인 결과라 할 수도 있겠다. 한창 자아와의 전쟁을 치루고 있던 내게 이토록 자극적인 영화는 없었을 테니까.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 엘리펀트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ㅡ장님 코끼리 말하듯ㅡ한 가지 사건을 맞닥뜨린 서로 다른 캐릭터의 시점을 보여준다.
카메라는 시종일관 누군가의 뒤를 좇는다.
존의 평범한 아침으로 시작된 영화는 우리의 주의를 존과 그의 아버지, 그리고 그들에게 일어난 소소한 일과에 집중시키다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은 채 또 일라이어스를 좇고, 그를 조금 이해할라 치면 또 다른 인물을 좇고 하는 식으로 꾸준한 배신을 반복한다.
그 사이에 존재하는 유기성이라봐야 그들이 모두 같은 학교 학생이라는 점뿐이다. 서로 아는 사이일 때도, 전혀 모르는 사이일 때도 있다.
단편적으로 보여지는 그들의 말과 행동을 말미암아 캐릭터를 이해하려고 애를 쓰다 결국엔 에라 모르겠다, 라는 심정으로 멍하니 바라만 보는데, 바로 그 순간에
사건은 일어난다.
그리고 그 때부터 플롯이 제 기능을 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그 지점이 오기 전까지 타임라인 위에 여러 개의 원을 그리듯 빙빙 돌며 인물들의 우연한 교차를 보여주는데 이는 아주 단순한, 혹은 아주 정교한 동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건이 일어나는 순간, 바로 그 곳에서 퍼즐이 완성된다.
어쩌면 감독은 대부분의 사건이 여느 영화에서처럼 늘 치밀한 인과관계 아래 있지만은 않다고 얘기하는 듯하다.
존은 골치덩어리 아빠 때문에 학교를 벗어나와 사건을 피하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없고 딱히 이렇다할 친구가 없어도 열심히 지내고자 했던 미셸은 첫 희생자가 된다.
단 한 순간의 우연으로.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던 알렉스는 친구인 에릭과 함께 계획적으로 사건을 꾸미는데, 단순히 복수를 위해서는 아니다. 에릭이 교장에게 더 이상 왕따가 생기지 않게 조심하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날리긴 하지만 영화는 이를 교훈으로 삼진 않는 듯하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화로운 오후, 햇살이 창을 통해 깨끗하게 닦여진 복도를 비추고 아이들은 제각각의 목적지를 가지고 수없이 그곳을 스쳐지난다.
새가 재잘대다 철컥, 하는 장전소리 이후에는 끔찍한 비명소리만이 텅 비어있던 공간을 메운다.
이 영화는 소름 끼치도록 현실과 닮아있다.
짧은 순간순간을 활용해 비춰진 캐릭터들은 제각각 학교에서의 전형적 인물들을 그리고, 사건의 용의자인 끔찍한 그 살인자들 역시 하교 후에 피아노를 연주하고, 아침밥에 불평을 내뱉는 평범한 10대 소년들을 표상한다.
그것이 알렉스의 본성이었을지, 철저히 후천적으로 발생한 계기였을지 우리는 결코 알지 못한다.
현실의 사건은 때로 아무런 이유없이 그냥, 벌어지곤 한다.
그것도 아주 순식간에, 그것이 우연인지, 운명인지 간에.
'영화 뜯어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Boogie Nights (0) | 2014.07.24 |
---|---|
Paranoid Park (0) | 2014.06.18 |
잘 알지도 못하면서 (0) | 2014.05.02 |
千と千尋の神隠し,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0) | 2014.04.21 |
My Blueberry Nights (0) | 2014.04.14 |